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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1세 여왕_SCU문화포럼(버진 퀸)_영화 '엘리자베스' 본문

SCU 온라인방송국/문화 비타민

엘리자베스1세 여왕_SCU문화포럼(버진 퀸)_영화 '엘리자베스'

서울사이버대학교 2011. 4. 14. 17:18

세계 인류의 반은 여자이고 반은 남자이다. 역사상 뛰어난 여성들은 많았지만, 남자가 이끄는 마차의 수레 바퀴 역활 밖에는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들어나지 않았다. 여성들이 주목받기 어려운 것이 세계역사였다.

세계 역사 중 그 이름을 떨친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왕이라는 권위와 노력으로 인류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여왕도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 신라의 선덕 여왕, 당나라의 측천무후,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 등 자신의 나라를 부국강병을 만들려고 애쓰고, 권모술수와 반대파을 이기고 성공한 여왕들었다. 그렇지 못한 여왕도 있었지만....

 


오늘은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영화 '엘리자베스'를 통해 소개를 하겠다.

16세기 당시 유럽은 카톨릭과 신교와의 종교전쟁으로 혼란스러웠다. 강대국인 프랑스와 스페인은 카톨릭 국가로서 유럽을 통치하고 있었고...영국은 카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고..다시 카톨릭으로 돌아가는 혼돈의 시기였다. 각 국가의 왕실은 결혼으로 동맹을 맺고..서로를 견제하였다. 그때 영궁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장을 하였다.



“나는 ‘버진 퀸’으로 불린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남편과 아이가 없다. 하지만 나는 국민들의 어머니이다. 신은 나에게 이런 힘든 짐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줄거리
1554년 잉글랜드, 구교신봉자인 메리 1세가 다스리고 있는 영국은 경제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죽음을 앞에 둔 메리 여왕은 신교도 박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신교도인 여왕의 여동생 엘리자베스(케이트 블랜쳇)는 모함으로 인해 사형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그녀는 살아나고 메리는 임종을 맞는다. 메리의 죽음으로 여왕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에게 대신들은 사랑하던 로버트 더들리(조셉 파인즈)와 헤어질 것을 강요한다. 국가를 위해서 여왕은 죽은 언니의 남편이었던 스페인의 필립 왕이나 프랑스 여왕의 조카 양주 중 한 사람을 선택해 결혼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다.

그녀는 옛애인인 더들리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큰 실망에 빠진다. 엘리자베스는 모두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정치에만 몰두하는데...
<출처 Daum 영화> 


 

영국 통치권의 상징...윈저성.. 권모술수가 판치는 이 성에서 엘리자베스는 살아 남아 여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와 더들리 백작....그들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여왕에 오르기 전에 행복한 모습...
엘리자베스는 헨리 8세의 딸로서 왕위승계 서열 3위여서...언제나 반역의 음모에 중심에 있었다.


헨리 8세의 맏딸 메리여왕...그녀는 아버지 헨리 8세가 국가 종교를 카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었지만..다시 카톨릭으로 돌리는 바람에.. 종교 숙청으로 많은 이들을 화형에 시켜 피의 메리로 불렸다.


여왕에 오르기 전에 엘리자베스는 권력에 접근조차 않하고... 조용히 평범하게 살아왔다. 교욱은 왕실교육을 받아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라틴어 등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여...후에 그녀가 여왕에 오른 후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었다.


반역의 가담했다는 음모로 엘리자베스는 런던탑에 갇혀...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어서 풀려났다.


메리여왕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녀는 본인의 죽음이 얼마 안남았다는 것으 알고...다음 왕위 계승자인 엘리자베스를 불러..."절대 카톨릭을 성공회로 바꾸지는 말라"는 명으로 왕위를 엘리자베스에게 물려주었다.


웨스터민스터에서 스물 다섯살에 영국 여왕에 등극한 엘리자베스 1세는 처음부터  반역과 암살에 시달렸다. 그녀는 아군과 적군을 천천히 살피는데....


여전히 왕위에 오른 후...더들리경과 사랑을 나누지만...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헤어질 것을 강요당하고...신하들은 프랑스의 기즈공작.. 형부였던 스페인인 필레페2세와 결혼을 추진하였다. 그녀가 신교를 회복함으로서 프랑스와 스페인을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강가에서 뱃놀이로 여유를 즐기는 엘리지베스 여왕...하지만..이때 암살위험에 처하지만...아무도 그녀를 구하지않고...더들리 경이 구해주는데...그녀는 더들리 경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영국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서 엘리자베스는 스코틀랜드 왕비이자 프랑스 기즈공작의 조카인 메리 기즈에게 처참히 패해..다시 한 번 위기에 몰렸다. 스코틀랜드는 카톨릭교가 국교였다. 내우왼환 위기에 봉착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까?


윌리엄 세실 경..그는 엘리자베스의 최측근으로 그녀을 왕위에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우고..여왕 집권 초반에 큰 역활을 하지만...국가를 위해서 여왕의 결혼을 밀어부쳤다....하지만...그녀가 권력을 손에 넣었을 때...세실경은 권력에서 밀려났다. 목숨을 보존한 채...여왕의 배려로 시골의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영왕 등극 후 윈저성의 밤은 암살과 반역의 음모가 더욱 심하였다. 언제나 불안에 떠는 여왕은 서서히 두려움을 없애고... 윈저성의 밤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프란시스 윌싱엄 경... 그는 세실경의 추천으로 여완의 호위를 맡으면서...신임을 얻었다. 여완의 오른팔로 그 역활을 충실히 하여...후에 반역의 무리들을 소탕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노포크공작...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최대의 적이었다. 그는 카톨릭 신봉자로서 여왕보다 더 많은 군대를 가졌고..
여왕 반대파의 수장으로서....여왕암살 음모를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스코틀랜드 메리여왕과의 결혼으로 왕위를 찬탈하려는 순간....윌싱엄 경의 속임수로 음모가 들어나서 처형대에서 사라졌다.


프랑스 대사...당시 16세가 유럽은 종교, 정치 등 외교술이 중요한 시기였다. 프랑스대사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프랑스의 앙쥬 공작과 결혼시키려고 외교적 노력을 하지만... 앙쥬공작의 본 모습을 본 여왕의 거절로 실패을 하였다.


더들리 경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들어나자..여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더들리 경은 결국 여왕 암살 음모에 가담을 하지만...여왕의 관용으로 목숨을 살려주었다. 차마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싶지 않은 여왕의 고뇌의 모습이 보였다.


반대파의 숙청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을 최강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 결과 그녀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나는 ‘버진 퀸’으로 불린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남편과 아이가 없다. 하지만 나는 국민들의 어머니이다. 신은 나에게 이런 힘든 짐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사진출처 Daum 영화>

엘리자베스 여왕은 100년 전쟁과 장미 전쟁 등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유럽의 2류국가 영국을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해상무역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안으로는 세익스피어 등 문예를 부흥시켜 그 명성을 더 하였다.

여성의 역사를 새로 쓴 엘리자베스 1세...그녀의 인생과 업적...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고뇌, 여왕으로서의 힘든 선택 등 우리가 현대에서 한 번 생각해 보아도 좋을 듯 해서 오늘 이 글을 적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영화'엘리자베스'를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테마필진(문화, 영화)루쿨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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